흥보가
- 강도근 창본
[전체 줄거리] 심술궂고 욕심 많은 형 놀보가 선량한 흥보 가족을 집에서 쫓아낸다. 흥보는 매품을 팔거나 온갖 궂은일을 해도 가난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다가 흥보는 우연히 둥지에서 떨어져 죽게 된제비를 살려 준다. 제비는 흥보에게 은혜를 갚기 위해 박씨를 물어다 주고, 흥보는 그것을 심어 박을 여러 개 수확한다. 박을 타자, 그 속에서 쌀을 비롯해 온갖 세간이 나와 흥보는 큰 부자가 된다. 놀보가 이 사실을 알고 제비 다리를 일부러 부러뜨린 다음 고쳐 준다. 제비는 앙갚음을 위해 박씨를 물어다 주고, 놀보는 그것을 심어 박을 수확해 탄다. 그러나 박 속에서는 노승, 왈패 등이 나와 놀보의 재산을 모두 뺏어 간다. 흥보는 놀보가 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놀보에게 자신의 재산을 나눠 준다. 그후 놀보는 개과천선하고 형제는 우애 있게 지낸다. 본문에 제시된 부분은 흥보가 놀보 집에서 쫓겨난 장면부터 흥보 마누라가 매품을 팔러 가는 흥보를 만류하는 장면까지다.
<전략> [중모리장단 - 중간 빠르기의 장단 ] 흥보가 기가 막혀, 나가란 말을 듣더니마는, 섰든 자리여가 끓어 엎져 서[서 있던 자리에 꿇어 엎드려서] ,
“아이고, 형님! 형님, 이게 웬 말이오? 이 엄동 설한풍에[혹독한 추위의 겨울바람에] 수다헌[많은] 자식덜을 다리고, 어느 곳으로 가서 산단 말이오? 형님, 한번 통촉을 하옵소서[헤아려 살펴주십시오.] .”
“이놈, 내가 너를 갈 곳까지 일러 주랴? 잔소리 말고 나가거라![막무가내로 내쫓는 놀부의 모습에서 몰인정하고 악독한 심사를 짐작할 수 있다.] ”
몽둥이를 추켜들고 추상같이 어르는구나. 흥보가 깜짝 놀래 안으로 들어가며,
“아이고, 여보, 마누라! 형님이 나가라 허니, 어느 영[명령]이라 어기오며, 어느 명령이라고 안 가겼 소?[형의 명령에 순종하는 모습을 통하여 순종적인 성격을 간접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자식들을 챙겨 보오. 큰자식아, 어디 갔나? 두채[‘둘째’의 방언] 놈아, 이리 오느라.”
이삿짐을 챙겨 지고, 놀보 앞에 가 꿇어 엎져[엎드려서 - 비표준어의 사용] , “형님, 갑니다. 부대 안녕히 계옵시오.”
“잘 가거라.”
흥보가 하릴없이[어찌할 수 없어] 울며불며 나가면서, 신세 자탄 울음 운다[주로 구어체를 사용하며, 현재형 시제를 활용하여 인물이 처한 상황을 실감 나게 드러내고 있다] .
“아이고, 아이고, 내 신세야. 부모님이 살았을 적에는 네 것 내 것이 다툼 없이 평생에 호의호식[좋은 옷을 입고 좋은 음식을 먹는 일] , 먹고 입고 쓰고 남어 세상 간 줄을 몰랐더니, 흥보의 신세가 일조에[하루아침에, 갑자기] 이리될 줄을 어느 뉘가 알겼느냐? 여보게, 마누라!”
“예.”
“어느 곳으로 갈까? 아서라, 산중으로 가자. 산중으 가 사자헌들 백물[온갖 물건] 이 귀하여 살 수 없고, 아서라, 도방[길가 근처에 있어서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도방처’의 의미] 으로 가자. 일 원산, 이 강경, 삼 포주[지금의 전북 부안군 줄포] , 사 법성, 도방으 가 사자헌들 비린내 짓궂어 살 수 없고, 충청도 가 사자헌들 양반들이 모도 억시어서 그곳에는 살 수가 없으니[유사한 구조의 문장을 반복함으로써 운율감을 형성하고 있다. 진퇴유곡(進退維谷), 사면초가(四 面楚歌)] , 어느 곳으로 가서 산단 말이냐?[판소리의 특징인 확장적 문체(장면의 극대화)가 드러난 부분이다.] ”
[아니리 - ‘창’을 통해 심리적 긴장감을 불러일으킨 다음, ‘아니리’를 통해 심리적 긴장감을 이완시키고 있다. ] 이렇게 흥보가 울며불며 나가, 그렁저렁 이리 갔다가 저리 갔다 허는디, 아, 살 디가 없이니까 거 동네 앞에 물방아실도 자기 안방이요, 이리저리 돌아댕기다가 셍현동 복덕촌[흥부가 거처를 정한 장소로, 성현과 같이 마음이 착하고 어진 사람들이 사는, 복과 덕이 많은 마을이라는 뜻으로 꾸며 지어낸 이름] 을 당도하였것다. 여러 날, 흥보 자식들이 잘 묵다가 굶어 노니, 모도 아사지경[굶어 죽게 된 지경] 이 되야 가지고, 하루는 음석[음식] 노래로 이놈들이 죽 나와서 조르넌 디, 한 뇜이 썩 나서며, “아이고, 어머니! 아이고, 어머니! 배는 고파 못 살겄소. 나 육개장 국에 사리쌀밥[흰 쌀밥] 많이 먹었 으면.”
“어따, 이 자석아. 저 입맛 도저하게 아네[흥보의 자식들이 먹을 것을 찾는 장면을 현실을 감안하지 않고 부리는 단순한 투정만으로 볼 수는 없다. ‘육개장 국’에 ‘사리쌀밥’을 비롯하여 ‘잣죽’이나 ‘호박떡’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인 기억을 더듬고 있다는 점에서 놀부에 의해 쫓겨나기 전의 생활 정도를 가늠하게 해 준다. 물론 향유층이 소망하는 요소들이 곳곳에 반영되었으리라는 점 역시 그냥 지나칠 순 없다.] . 육개장 국에 사리쌀밥이 어디 있단 말이냐, 이 저석아. 너 입맛 한번 도저허게[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훌륭 하게] 잘 아는다우아.[남원과 순창 인근에서 통용되는 감탄형 어미] ” 또 한 뇜이 나앉으며, “아이고, 어머니! 나는 용미봉탕[용과 봉황으로 만든 음식이라는 뜻으로, 맛이 매우 좋은 음식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에 잣죽 좀 먹었으면 좋겄소.”
“어따, 이 저석아. 아이, 보리밥도 없는디[삼순구식(三旬九食)], 용미봉탕에 잣죽이 또 어디 있단 말이냐?
느그들 난시[‘때문에’의 전라도 방언] 못 살겄다, 못 살겄어.”
또 한 뇜이 썩 나시며,
“아이고, 어머니. 나 호박떡 한 시리[‘시루’의 방언] 만 먹었으면 좋겠소. 호박떡은 뜨거도 달고, 식어도 달고, 아 이놈의 것, 입에 짝짝 들앵기면서[한 군데 잔뜩 들러붙어서 엉기면서] 맛있지요. 한시리만 갖다 주시오.”
“아이고, 이 저석아, 호박떡이 어디 있단 말이냐?”
이때여 배를 득득 긁고 나오는 놈은 흥보 큰아들이었다. 쉬염이 가지가 돋쳐 갖고, 이뇜이 이가 쭉쭉 빠져서 요상시럽게 생겨 갖고[우스꽝스러운 외양 묘사] 썩 나와서 즈그 어미를 한번 졸라 보는디,
“아이고, 어머니! 아이고, 어머니! 나는 옷도 싫고, 밥도 싫고, 밤이나 낮이나 불매증[잠이 안 오는 증세] 이 생겨 잠안 온 병이 있소.”
흥보 마느래 깜짝 놀래며, “어따, 이 저석아! 못 묵고 못 입는 것은 고사허고, 아, 병이나 없어야 안씨겠느냐? 무신 병이냐? 말을 하여라.”
“어머니 아버지 공론하고, 나 장가 좀 보내 주오![동생들이 음식 이야기를 하면서 어머니를 괴롭게 만들 때, 이를 만류 하기는커녕 한술 더 떠 장가를 보내달라고 요구하는 장남은 철부지와 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특히 온 식구가 삼순구식(三旬九食)하는 판에, 이러한 사정을 헤아리지도 못한 채 장가를 보내달라는 장남의 요구는 사뭇 해학적이라 할 수 있다.] ”
[진양조장단 - 가장 느린 가락으로 일반적으로 슬픈 장면이나, 비장미가 넘치는 대목에서 사용된다. 이어지는 내용이 흥부 마누라의 처절한 심리를 보여주기 때문에 진양조 장단을 사용하고 있다. ] 흥보 마누래 이 말을 듣더니, 섰든 자리어 주저앉으며,
“어따, 이놈아! 너 이놈아, 말 들어라. 내가 성세[‘형세(形勢)’의 잘못된 발음] 가 있고 보면, 네 장개가 여태 있으며, 중헌 가장을 못 먹이고, 어린 자식을 벴기겼느냐?[집안 형편이 조금만 허락해도 장가를 보내고 소중한 가장을 먹이 며, 어린 자식들을 입혔을 것이라는 말로 현재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터무니없는 요구임을 암시하고 있다.] 못 먹이고, 못 입힌 게 어미 간장이 다 녹는다.”
[아니리] 이렇닷이 흥보 마느래 울음을 울고 있을 적에, 흥보가 썩 들어오며,
“여보시오, 마누라. 이렇게 울음만 울고 있어서 무신 소용이 있소? 내 오늘 읍내 좀 갖다 오겠소.”
“아니, 읍내는 뭐 허로 가실라고 그러시오?”
“환자 맡은 호방한테 가서 환자[관가에서 가을에 이자를 붙여 갚는 조건으로 꾸어 주던 곡식] 섬이나 얻어다가, 아우리 권숙[자기 집에 딸린 식구] 간에 먹고 살아야 할 것 아닌가. 거 내 갓이나 좀 내어 오오.”
“아이고, 영감. 가지 마시오.”
“아이, 왜 내 가지 마란 말이냐?”
“그 정상에[딱한 형편에] 환자 묵고 도망간다고 안 줄테니, 가지 마오. 절대 안 줄팅개 가지 마시오.[흥보 마누라는 남편 흥보에 비해 현실적인 감각이 더 뛰어나고 사리 판단이 분명한 사람으로 그려지고 있다.] ”
“허허. 이 사람이. 없는 사람이 무신 일을 꼭 믿고만 댕기는가? 사구일생이제[이제 아홉 번 죽음에 한 번 사는 셈 치는 것이지] . 잔말 말고 그 갓이나 좀 내 오오.[흥보가 환자를 타먹기 위해 질청 출입을 결심한 것은 결과를 낙관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만큼 절박함을 느꼈기 때문이므로 흥보의 행동을 궁여지책(窮餘之策) 정도로 정리할 수 있다.] ”
“갓은 엇다 두었어요?”
“아, 남자 갓 둔 디도 몰라? 뒤안 굴뚝 속으다여 두었어.[비상식적인 언행이 해학성을 자아내고 있다.] ”
“아이구, 얄궂어라. 아, 왜 갓을 굴뚝 속에다 옇단 말이오?”
“그런 것인가. 신미년 국상시 조대전[‘신묘년(辛卯年 - 1890년) 조대비(趙大妃 - 헌종의 어머니) 국상시(國喪時)에’의 잘못]
에 어느 친구 한 분이 백립[상제나, 국상이 났을 때 쓰던 흰 베로 만든 갓] 이 양[갓의 테가 있는 둥글고 넓은 부분] 이 존존허 다고[아직 쓸 만하다고] 칠을 벳겨 씨라 허니, 아 칠 벳길 돈이 있어야제. 끄시럼[그을음]에 끄려 씰라고 여 두었시니[그을려 쓰려고 넣어 두었으니] 내어 오오. 그리고 그 내 도복이랑 내어 오오.”
“아, 도복은 엇다 뒀어요?”
“뒤안 장 안에 들었제.”
흥보 마누래 있다가,
“아 여보시오. 우리 집에 무신 장롱이 있단 말이오?”
“아, 이 사람이. 아, 달구장[‘닭장’의 방언, 언어유희적 요소] 은 자네 장으로 안 아는가그려. 잔말 말고 얼른 내어오소.” 흥보가 질청[관청에서 아전들이 일을 맡아 보던 청사] 을 들어갈라고 의복을 채리고 들어가는디,
[자진모리장단] 흥보가 들어간다. 흥보가 들어간다. 흥보 치레를 볼작시면, 철대 떨어진 헌 파립 벼릿줄 총총 매어 조새 갓끈을 달아, 편자 터진 헌 망건, 밥풀관자[망건당줄을 꿸 수 있도록 아교풀로 만들어 망건에 다는 작은 고리를 의미하는 ‘갖풀관자’의 잘못] , 종이 당줄, 뒤통 나게 졸라매고, 떨어진 헌 도복을 실뛰를 총총 지어 고푼 배 눌러 띠고, 한 손에다가 곱돌 조대[광택이 나는 곱돌로 담배통을 만든 담뱃대] 를 들고, 또 한 손에다가는 떨어진 부채 들고[폐포파립(弊袍破笠)], 죽어도 양반이라고[양반의 허세와 가식을 풍자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는 표현이다.] , 여덟 팔자걸음으로 걸음 벗썩 길게 떼어, 어식비식[이리 저리 쏠리어 가지런하지 못한 모양] .
[아니리] 흥보가 어식비식 들어가다가 한 생객이 났겄다.
“내가 그리도 양반인디, 내가 저다려 ‘허 시오’ 허기는 그렇고, ‘허소’ 헤기는 좀 뭣허니, 내 웃음으로, 반말로 따질밲이 수가 없다.[양반 체면에 호방에게 말을 올릴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는 의미이다.] ”
흥보가 대문을 열고 썩 들어가며,
“여, 호방 계신지 모르제.”
호뱅이 나오며,
“아이, 여 박 새완[‘생원’의 비표준어로 볼 수 있으며, 이러한 호칭은 흥보의 신분을 확인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아니시오?”
“허허허허 하하. 참 잘 알아맞혔구만.”
“아이고, 이 박 생원 어쩐 일이시오?”
“거 호방한티 아순[‘아쉬운’의 전라도 방언] 말헐 일이 있어서 왔는디, 들어주실란지 모르제.”
“아, 무신 말씸이오?”
“거, 환자 한 섬만 주제. 거 환자 한 섬만 주면, 어린 자식들 구환허고, 내 가실에 가서 소매동냥[이집 저 집 다니며 먹을 것을 얻어서 소매에 넣어 가지고 다니는 소맷동냥] 이라도 해 가지고 내 착실히 갚아 줄 터이니, 거,환자 한 섬만 주제.”
“아, 박 새완 헹님[놀부]이 천석꾼 부자인디, 환자를 자시다니? 아, 그게 무신 말씸이오?[놀보의 재력을 감안하면 환자를 타먹는 일이 터무니없다는 의미로, 흥보가 놀보에 의해 쫓겨난 사실을 호방이 모르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
“허허, 이 사람아. 형제간 것도 너무 다 갖다 먹으니까 염치가 없드구만.”
“그건 그렇지요. 박 새완, 그럴 게 아니라, 품 하나 팔아 보실라요?”
“아, 돈 생길 품 같으면 내 팔고말고. 무신 품인가 어서 말 좀 해 보소.”
“다른 게 아니라, 우리 골 좌수가 병영 영문에 잽혔는디, 좌수 대신으로 곤장 열 대만 맞으면, 곤장한 개에 돈이 석 냥썩 삼십 냥은 곱아 논[확실하게 정해진] 돈이요, 말 타고 가라고 헤서 마삯 닷 냥까지 딱제적해 놨으니, 그 품 좀 팔아 볼라요?[매품팔이에 대한 의향을 묻는 대목을 통하여, 당시 생활이 어려워서 매품을 팔려는 사람 들이 있었다는 사회상이 반영된 것을 알 수 있다.] ”
흥보가 돈 말을 듣더니 어떻게 좋던지[심사숙고하지 않고 매품을 팔겠노라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 흥보는 아내에 비해 신중함이 부족한 성격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한편으로는 그만큼 돈이 필요했던 절박감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
“내 팔 터이니, 그돈 닷 냥 얼른 이리 주오.”
“글랑 그리하시오.”
[중모리장단] 저 아전 거동을 보아라. 궤 문을 쩔컥 열고 돈 닷 냥을 내어 주니, 흥보가 받아 들고,
“나 다녀오리다.”
“예. 평안히 다녀오오.”
박흥보가 좋아라고, 질청 문밖 썩 나서서 두 손을 번쩍 들고,
“얼씨구나, 얼씨구나, 돈 봐라! 지화자자 졸씨고. 돈 돈 도돈 돈, 돈 봐라, 돈 봐. 우선 배가 고프니 떡국 집으로 들어가자. 여보, 떡국 장사. 떡국 서 그럭만 주오.[앉은 자리에서 떡국을 세 그릇이나 주문한 행동은 그만큼 흥보가 굶주려있음을 암시하는 근거로 볼 수 있다.] ”
떡국을 사서 많이 먹고, 막걸리 집으로 들어가서 막걸리 두 그럭을 사서 먹고, 비지 집으로 들어가서,
“여보, 비지 장사. 비지 한 보심만[한 보시기(작은 사발)만] 주오.”
비지를 사서 찌웃찌웃하게 먹고, 어깨를 늘이우고, 죽통을 백스리고[입을 길게 빼고] ,
“얼씨구나아아 아, 좋네! 대장부 한걸음에 엽전 설훈닷 냥이 생겼구나[매를 맞을 일은 전혀 걱정하지도 않은 채 매품팔이를 통하여 손에 들어올 서른다섯 냥만을 생각하는 것으로 보아 흥보는 기분에 얽매여 사는 인물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
저그 집으로 들어가며,
“여보게, 마누라! 여보게, 이 사람아. 집안 어른이 어디 갔다가 집안이라고 들어오면, 우루루루루 쫓아 나와 영접허는 것이 도리 옳제, 자네가 이 사람아, 당돌히 앉어서 좌이부동 [가만히 앉아서 움직이지 않는 태도] 이 웬 말인가? 에라, 이 사람아, 몹쓸 사람.”
[중중모리장단] 흥보 마누래 나온다. 흥보 마누래가 나와. 흥보 마누래가 나온다. 아장아장으 나온다.
“아이고, 여보, 영감! 영감 오신 줄 내 몰랐소. 영감 오신 줄 내 몰랐소. 이리 오시오. 이리 와.”
“어따, 이 사람아, 저리 좀 가소. 이 돈 근본을 자네 안가? 돈의 근본을 자네 알어? 못난 사람은 잘난 돈, 잘난 사람은 더 잘난 돈[배금주의적 가치관을 보이고 있다.] , 맹상군의 술래바쿠처럼 둥글둥글이 생긴 돈, 생살지권을 가진 돈, 부귀공명이 붙은 돈[돈을 마련해서 귀가한 가장으로서의 의기양양한 태도가 드러난 부분으로, 확장적 문체가 두드러진다.] . 이놈의 돈아! 아나, 돈아 아아! 어디를 갔다가 이제야 오느냐? 얼씨구나 졸씨고.”
흥보 마누래가 달려들며, “아이고 여보, 영감. 이 돈 근본이 웬일이요? 일수변을 얻어 왔소? 월수 체겨 파수변을 얻어 왔소? 오 푼 달변[‘일수변’, ‘월수 체겨 파수변’ 등과 함께 이자를 주기로 하고 빌린 돈의 여러 가지 체계를 의미한다.] 을 얻어 왔소?”
“아니로세, 아니여. 변전 일수 왜 얻겄나? 지기하사[어떤 일에든지 서로 마음이 통함] 우리 아내 하나님이 도우시어, 공돈 닷 냥이 들어왔어.”
[아니리] “아이고, 공돈이라니요? 아이, 공돈이라니 무신 공돈이란 말이오?”
“아, 이 사람아, 줏은 돈과 다름이 없단 말일세.”
“앗시오[‘아서라’의 잘못인 ‘앗아라’의 존칭형] . 노상지재물[길에서 얻은 물건이라는 의미의 ‘노상지취물(路上之取物)’의 잘못된 표현] 은 군자의 도리가 아니온디, 줏은 사람은 좋거니와, 잃어버린 사람은 얼매나 속이 아프겠소? 도로 그자리 갖다 노시오.”
“허허. 우리 마느래는 언제든지 착헌 마음이여. 그렇제. 여자가 그리 착헌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제. 거 뭐 왜말맬로[왜말처럼, 일본인들이 타고 다니는 말처럼] 덜렁덜렁허고 댕기면 못 쓰니. 내 그먼 내력을 갈쳐 줄터이니 들어 보소. 다른 게 아니라, 우리 골 좌수가 병영 영문에 잽혔다고 허제. 거 좌수 대신으로 곤장열 개만 맞으면, 곤장 한 개에 돈이 석 냥썩이고, 아 우선 마삯 닷 냥 받아 왔어. 말 타고 가라고 헤서. 이 돈 갖고, 두말할 것도 없어. 쌀 팔고 괴기 사서 육죽을 누구룸허게[먹기에 좋을 만큼 눅눅하고 묽게] 쑤소. 권숙이 많으니까 큰 가매솥에다가 그저 다뿍[듬뿍] 쑤어. 그리 갖고 코 끄터리서 그저 죽 말국이 댕강댕강 널찌드락[떨어질 때까지] 몽땅 한번 먹어 보세.”
흥보 마누래가 이 말을 듣더니, 중한 가장 매품 팔아 먹고산다니 두 눈이 캄캄허고, 사지가 벌벌 떨리 며,
[진양조장단] 섰든 자리여가 버썩[문맥상 ‘털썩’정도로 볼 수 있다.] 주저앉으며,
“아이고, 영감! 영감, 이게웬 말이오? 천불생무록지인이오, 지부장무명지초라[하늘은 먹고 살 것이 없는 사람은 태어나게 하지 않고, 땅은 이름이 없는 풀을 자라게 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제 먹을 것과 할 일은 제각각 타고난다는 말] . 하날이 무너져도 솟아날 궁기[‘구멍이’를 뜻하는 고어 ‘굼기’의 잘못된 형태] 가 있는 법이니, 지발 덕분 가지 마오. 응지[그늘진 땅] 가 양지 되고, 양지가 응지 되오 [새옹지마(塞翁之馬)] . 병영 영문 곤장 한 개만 맞고 보면 종신 골병이 든답디다. 영감! 가지를 말라면, 가지를 마오. 불쌍헌 우리 영감, 가지를 마오.”
[아니리] “영감, 영감 부대 가지 마오.”
흥보가 홰를 왈칵 내며,
“야 이 사람아, 시끄럽네. 아 대장부 사나가 큰 길을 떠나는디, 아, 자네가 가란다고 가고, 가지 마란다고 내가 안 갈 것인가? 아, 이 사람아, 그런 그, 말 함부로 했다가 냄이 알면 내 앞에 가니까, 그 조용 좀 허소.”
“그러면 영감, 부대 매 안 맞고 오기를 바래겄소.”
“아, 이 사람 큰일 났어. 아, 매 맞으러 가는 사람이 매 안 맞고 오면, 돈 어떻게 벌라고 안 맞고 오기를 바래야?”
흥보 자식들이 모도 나오면서,
“아, 아버지! 아이, 어디 가실라요?”
“어, 나 병영 좀 갔다 올란다.”
“아버지 병영 갔다 오면은, 다른 것은 소용이 없고, 거 뱁이나 한 그럭 사 오시오.”
“오냐. 밥 사다 줄 터이니 좀 지달라라[‘기다려라’의 전라도 방언] .”
또 한 놈이 나앉으며,
“아버지, 어디 가시오?”
“병영 간다. 병영 가.”
“병영 가시그던 그, 저, 나, 저, 떡이나 좀 한 시리 갖다 주시오.”
“오냐. 갖다 줄 테니 걱정 말아라.”
자식들을 달래 놓고,
“내 다녀올 터이니, 마누라, 걱정치 말고 가 데리고 있으시오, 엉?”
O 갈래 : 판소리 사설
O 성격 : 해학적, 교훈적, 서민적
O 제재 : 흥보 자식들의 음식타령과 매품을 팔러 가는 홍보
O 주제 :
➀ 표면 – 형제간의 우애 및 권선징악
➁ 이면 – 조선 후기 빈부 갈등
O 특징 :
➀ 민중의 비속한 표현과 양반의 전아한 표현이 함께 드러나고 있다
➁ 일상적 구어와 현재형 시제를 사용하여 장면을 사 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O 흥보가에서 해학적 틍질을 나타내는 요인
➀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인물의 말
➁ 의외의 터무니없는 발상이 담긴 말
➂ 언어유희 사용
➃ 우스꽝스러운 인물 묘사
O 판소리의 장단
장단 | 내용 |
진양조 | 가장 느린 장단. 애절한 느낌을 전할 때 |
중모리 | 중간 빠르기의 장단. 상황을 담담하게 서술할 때 |
중중모리 | 약간 빠른 장단. 흠겨운 느낌을 자아낼 때 |
자진모리 | 빠른 장단. 급박한 장면을 나타낼 때 |
휘모리 | 가장 빠른 장단. 매우 분주한 장면을 나타낼 때 |
O 창과 아니리의 기능
➀ 창 : 인물의 고양된 정서를 음악의 가락으로 표현 하여 정서적 긴장과 감흥을 크게 유발함
➁ 아니리 : 서사적 전개를 주로 담당함. 해학적 부분 을 다루는 경우가 많음. 정서적 긴장을 이완시킴
=> 창과 아니리를 교체 반복하여 긴장과 이완을 줌으로 써 예술적 효과를 가져옴
'요점정리 > 현대 산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요점 정리) 성난 풀잎 - 이문구 (0) | 2023.05.03 |
---|---|
(요점 정리) 화랑의 후예 - 황순원 (0) | 2023.05.03 |
(요점 정리) 황진이 - 홍석중 (0) | 2023.04.30 |
(요점 정리) 화려한 실종 - 이청준 (0) | 2023.04.30 |
(요점 정리) 허생의 처 - 이남희 (0) | 2023.04.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