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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점정리/고전 산문

(요점 정리) 산성일기 – 어느 궁녀

by 세모답 2023. 5.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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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더읽기) 산성일기 - 어느 궁녀.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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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성일기

어느 궁녀

 

이십오 일의 극한(極寒). 묘당(廟堂)이 젹진의 신 보오니, 샹이 오샤,

25일에 날씨가 매우 추웠다. 조정에서 적진에 사신 보내기를 청하니 임금이 말씀하셨다.

 

 

아국이 양 화친으로져의게 쇽으니, 이졔  신을 보야 욕될 줄 알, 모든 의논이 이러니 이 셰시(歲時), , 고기고 은합(銀盒)의 실과담아 후졍(厚情)을 뵌 후, 야 졉담(接談)야 긔을 살피리라.”

시다.

우리나라가 늘 화친으로 저들에게 속았으니 이제 또 사신을 보내면 욕될 줄 안다.
그렇지만 모든 의논이 이러하니, 지금이 세시이므로 술과 고기를 보내고, 은합에 과일을 담아서 두터운 정을 보인 후에, 만나서 이야기하여 기색을 살피리라.”

 

 

이십뉵 일의 니경직(李景稷), 김신국(金藎國)이 술, 고기 은합을 가지고 젹진의 가니, 젹쟝이 ,

26일에 이경직(李景稷)과 김신국(金藎國)이 술과 고기를 은합에 넣어 적진에 갔다. 그러자

적장이 말하였다.

 

 

 

 

군듕(軍中)의 날마다 쇼잡고 보믈이 뫼혀시니, 이거므어 리오. 네 나라 군신(君臣)이 돌 굼긔셔 굴먼 지 오라니, 가히 스 도다.”

우리 군영은 날마다 소를 잡고 보물이 산같이 쌓였는데 이것을 무엇에 쓰리오? 너희 나라 군신이 돌구멍에서 굶은 지가 오래니 가히 스스로 쓰는 것이 옳으리라.”

, 여 밧지 아니고 도로 보니라.
그러고는 결국 받지 않고 도로 보냈다.

 

이십칠 일의 날마다 셩듕의 구완라 오 일 인도 오니 업고,

27일에 날마다 성안에서 구원하러 오는 군사를 바랐으나 한 사람도 오는 이가 없었다

 

 

강원 감됴뎡회(趙廷虎) 본도군(本道軍)이 다 못지 못엿기로 양근(楊根)의 퇴진여 후의 오 리고,

강원 감사 조정호(趙廷虎)가 본 도()의 군사가 다 모이지 못했으므로 양근에 퇴진하여 뒤에 오는 군사를 기다리고,

 

 

몬져 영쟝(營將) 권졍길(權井吉)여곰 녕병(領兵)야 검단 산셩(黔丹山城)의 니러 봉화(烽火)드러 셔로 응.

먼저 영장(營將) 권정길에게 군사를 거느리게 하여 검단 산성(黔丹山城)에 이르러 봉화를 들어 서로 응하였다.

 

 

 

O 연대 : 인조 14(1636), 병자호란

O 작자 : 어느 궁녀

O 갈래 : 일기체 수필, 궁중 수필

O 성격 : 기록 문학, 궁중 문학

O 표현 : 간결하고 중후한 궁중어 사용

O 문체 : 산문체, 내간체, 서사적 일기체

O 출전 : 필사본 산성일기

O 주제 : 병자호란의 치욕남한산성에서의 항쟁

 

O '산성일기' 전체의 구성 :

- 병자호란 당시의 전쟁 체험을 한글로 기록한 내간체인 일기인 '산성일기'는 도입부와 중심부 및 종결부의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도입부에서는 청 태조 누루하치가 명나라로부터 용호 장군(龍虎將軍)의 이름을 얻는데서 시작하여 47년간의 일을 짤막하게 설명하였다. 앞 중심부는 병자년, 16361212일부터의 전쟁에서부터 시작하여 1637130, 임금이 세자와 함께 청의(靑衣)를 입고 서문으로 나가 삼전도에서 청나라에게 치욕적인 항복을 하고 서울로 돌아오기까지 48일간의 일을 기록한 것이다. 종결부는 그 이후 3년 간의 일을 짧게 요약한 것이다.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피난가는 과정

산성에서의 처절한 항쟁

삼전도에서의 항복(降伏)

 

병자 1217~ 22 소규모의 전투중에 청군이 화친을 제의함
병자 1223~ 26 왕의 독전과 적진에 세찬(歲饌)이 거절당함
병자 1227~ 28 근왕병의 구원은 오지 않고 김류는 패함
병자 1229~ 정축 11 청태종이 도착함
정축 12 청으로부터 굴욕적인 서신을 받아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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